올해는 예년에 비해 봄이 길었던 것 같다. 코로나19로 중국 쪽 생산공장들이 정상 가동되지 못하면서 미세먼지가 줄어든 것도 봄을 길게 느끼는 한 요인이 된 것 같다. 예년에 비해 봄철 야외 활동을 하는데 제약(미세먼지)이 없어지면서 야외에서 시간을 보낸 날들이 많다. 그만큼 봄을 만끽할 시간이 더 늘어났다. 그래서 봄이 더 길게 느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도 어느새 여름이 봄을 밀어냈다. 다소 더디기는 했지만 여름의 속도는 빨랐다. 위력은 대단하다. 5월 중순 경 2~3일 사이 계절이, 기온이, 습도가, 한낮의 태양이 확 바뀌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그렇게 계절은 흘렀다.
일상을 비집고 여름이 밀고 들어온 5월 중순, 텃밭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온이 오르고 일조량이 늘어나면서 작물들의 생육도 왕성해졌다. 텃밭에 자주 찾아가지 못해 관리가 잘 안되긴 했지만 그래도 모종들을 잘 자랐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장 먼저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해 준 것은 상추를 비롯한 쌈채소다. 4월 초순에 심고 5월 중순에 쌈채소 첫 수확을 시작했다.
사실 수확 시기를 많이 놓쳤다는 생각도 든다. 청상추와 적상추는 손바닥보다 크게 잘 자랐다. 먹기에 딱 적당한 크기다. 하지만 이미 아래쪽에는 짓물러 썩은 상추 잎들도 많았다. 제 때 상추를 따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케일은 부채만 하게 자라서 "이걸 쌈으로 먹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상추도 속이 꽉 차고 잎이 아이들 머리만큼 커졌다.
5월 초부터 상추를 비롯한 쌈채소를 수확해도 됐었다. 여름이 오기 전, 봄의 끝자락에서부터 쌈채소의 계절인 셈이다. 텃밭을 자주 찾아가지 못해 그 시기를 놓쳤을 뿐이다.
대나무 소쿠리에 쌈을 한 가득 땄다. 가장 아래 적상추와 청상추가 수북하다. 그 위에는 양상추가 한가득이다. 맨 위에 부채잎 만한 케일을 올렸다. 한 20분가량 쌈 채소를 따고 작물 주변에 자라난 잡초를 뽑았다. 중간중간 짓물러진 잎들을 제거해 주기도 했다. 그래야 작물 사이로 통풍이 잘 돼서 다른 싱싱한 잎이 짓물러지지 않는다.
쌈채소를 다 따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낮게 드리웠다. 드문 드문 푸른 하늘이 화창함을 더한다. 밭 주위로 낮게 드리운 산들도 완연한 초여름으로 접어들었다. 빼곡하게 잎들을 채운 나무들이 겨우내 헐벗었던 산을 우람하게 만들어줬다. 뼈대만 앙상하던 산 능선들은 겨울 동안 긴장한 듯 보였다. 하지만 봄을 지나며 선을 둥그렇게 늘어뜨리고 긴장을 풀어낸 모습이다.
텃밭 수돗가에서 쌈을 대충 씻었다. 흙이 묻어 있는 상태로 그냥 가져가기 싫었다. 수돗물에 씻는 동안 햇볕에 녹초가 돼서 흐느적대던 쌈채소들은 다시 생기를 찾았다. 찬물에 담그고 흙을 털어내고 흐르는 물에 씻는 동안 쌈채소 마디마디마다 탄력이 살아났다. 흐느적거리던 쌈채소는 다시 단단하고 싱싱하게 되살아났다.
집으로 돌아와 쌈채소를 다시 씻어 냉장고에 넣었다. 마트에 들러 삼겹살을 샀다. 식탁 위에 불판을 올리고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노릇노릇하게 삼겹살이 구워지면서 팬에 기름이 적당히 스며들었다. 김치와 버섯을 올려 구웠다. 고소한 삼겹살 냄새 위로 시큼한 김치가 구워지는 냄새가 덧 씌워졌다.
쌈을 두장 손 위에 얹고 잘 구워진 삼겹살 한 조각과 고추를 올렸다. 밥도 아주 조금 얹었다. 쌈장과 구운 버섯, 김치도 올렸다. 이날은 메인 메뉴가 쌈인 만큼 쌈 맛에 집중했다. 입 속에서 와그작와그작 씹히는 식감이 너무 좋았다. 노지에서 재배한 쌈이라서 그런지 억세지만 부드러웠다. 표현이 모순되지만 실제 그랬다.
식감도 식감이지만 상추와 양상추의 향기도 살아났다. 마트에서 사는 쌈채소는 향기가 거의 없다. 풀 냄새라고 할까, 그런 류의 향기가 났다. 케일은 너무 커서 쌈으로 먹지 못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쌈으로 먹으니 질기지 않고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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