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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다방-힙지로 감성 깡패에서 즐기는 다방 쌍화차 한 잔

한국 견문록 [맛집기행]

by RehDen 2021. 6. 1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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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을지로 일대에 이런저런 음식점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면서 힙지로란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하지만 을지로의 터줏대감은 을지다방을 비롯한 노포들이다. 을지다방 바로 옆의 을지면옥, 조선옥, 양미옥, 만선호프, 안동장, 동원집 등등.

 

가끔 점심 약속이 없고, 평소보다 시간 여유가 있는 점심시간이면 회사 선배와 함께 청계천을 걸어 을지면옥에 간다. 아직 사람들이 줄을 서기 전 빠르게 평양냉면과 수육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고 사람들이 몰려오는 시간에 빠져나온다.

 

을지다방 창문.

 

그리곤 술도 깰 겸 잠시 쉴 겸 들르는 곳이 을지다방이다. 을지면옥을 빠져나오면 바로 옆 2층에 을지다방이 있다. 을지로 일대 노포들이 다 그렇듯 공구상가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면, 공구상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한 다방이 나온다.

 

을지다방 들어가는 입구.

 

하지만 삭막하기도 한 공구상가와는 다르게 을지다방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온정이 깃들어 있다. 촌스럽지만 따듯한 분위기와 소박하면서도 예스러운 풍경에 마음이 놓인다. 차와 음식 맛은 기본이다. 세월을 거치는 동안 주변 상인은 물론, 인근 오피스의 직장인, 이제는 젊은 식도락가까지 그 맛에 빠져 을지다방에 몰려온다.

 

을지다방 주방.

 

을지다방의 시그니처 메뉴는 2가지다. 쌍화차와 라면. 이외 냉커피, 냉칡즙, 오렌지주스, 매실주스, 토마토주스, 오미자주스, 인삼차, 생강차 등을 판다. 라면은 메뉴판에는 없다.

 

 

나는 을지다방이 지금처럼 핫해지기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은 드나들었지만 아직까지 을지다방에서 먹어본 메뉴는 쌍화차와 오미자주스, 냉커피, 생강차 등이 전부다. 라면을 먹어보고 싶었지만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을지다방 메뉴.

 

우선 라면은 오전 11시 전까지만 판다. 아침부터 을지다방에 갈 일이 없다. 또 팔지도 않을 뿐더러, 점심시간에 판다고 해도 먹을 수가 없다. 주로 을지면옥이나 양미옥, 조선옥 등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배가 부른 상태로 을지다방에 들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꼭 아침에 들러 라면을 먹어봐야겠다.

 

을지다방 쌍화차.

 

이날도 자리에 앉자마자 쌍화차를 시켰다. 을지다방 쌍화차는 사장님이 직접 여러 약재를 넣고 다린 핸드메이드다. 주문을 하면 푹 달여 놓은 쌍화차에 여러 견과류와 슬라이스 대추를 넣고 그 위에 검은 갈색의 고운 가루를 뿌린다. 마지막으로 계란 노른자를 톡 떨어뜨려 내오신다.

 

을지다방 쌍화차.

 

순백색의 잔에 짙은 갈색의 쌍화차, 샛노란색의 계란 노른자까지 쌍화차 한잔의 색감이 너무 좋다. 거기다 을지다방의 테이블은 붉은 갈색에 가깝다. 전체적으로 쌍화차가 놓인 공간의 색감이 조화를 이루면서 안정된 느낌이 든다. 전혀 이질적이거나 어색하지 않다. 이런 작은 분위기 하나하나가 감성이고, 그게 지금 을지다방이 핫해진 이유 아닐까.

 

을지다방 테이블에 있는 설탕통.

 

쌍화차를 담은 잔은 순백색의 도자기다. 아주 오래된 옛날 디자인의 다방 커피잔인데, 그래도 싸구려는 아닌 것 같다. 나름 무늬도 세련되고 만듦새도 견고하다. 또 잔 받침도 좋아보인다. 양각으로 무늬를 넣었고, 중간 중간 음각으로 성형해 아예 홈을 파서 뻥 뚫리게 만들었다. 잔 받침과 잔이 조화를 이룬다. 다만 간혹 잔 중간중간 아주 작게 이가 나간 부분이 있으니 주의하자.

 

을지다방 창문쪽 인테리어.

 

을지다방의 감성은 오래된 80년대 인테리어와 소품에서 나오는 것 같다. 뭔가 촌스러운면서 안정감이 있고, 조잡한것 같으면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 천장과 벽면, 바닥의 마감은 오래됐지만 관리가 잘 됐고, 테이블과 의자, 벽면에 걸린 액자 등 소품들도 정돈되지 않은 것 같으면서 일체감이 있다.

 

을지다방 천장과 벽면, 창문.

 

천장과 벽면 위쪽은 하얀색 계통 페인트로 마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런 베이지색으로 변했다. 그 색감이 더럽거나 초라하지 않다. 오히려 무언가 편안한 느낌을 준다. 천장 모서리, 벽면 틈 새에 끼인 먼지도 감성 인테리어 소품처럼 느껴진다.

 

을지다방 아랫쪽 벽면.

 

벽면 아랫쪽 마감은 다르다. 바닥에서부터 1m 정도 되는 곳까지는 청테이프 색으로 칠했다. 옛날 스타일의 벽면 페인트 마감이다. 스크레치나 오렴 등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또 한쪽 벽면은 통 거울을 달았다.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기 위한 인테리어는 아닐까.

 

을지다방 입구 바닥.

 

바닥은 붉은 갈색이다. 작고 촘초하게 구름무늬가 나 있다. 테일블도 바닥과 비슷한 색감과 비슷한 무늬를 가졌다. 일체감이 든다. 쇼파도 같은 계통의 색감이다. 다만 조금 더 붉은색에 가깝다. 뭐랄까 짙은 핑크를 품은 옅은 갈색의 느낌이다. 화학소재 인조가죽으로 마감을 한 옛날 스타일 소파다.

 

을지다방 창문의 나비 그림과 각종 액자.

 

창문과 계단 쪽에는 액자와 각종 소품들이 놓여있다. 창문에는 을지다방이라고 쓰여 있다. 일종의 가난이다. 글자 아래에 나비들을 그려 넣었는데 이쁘다. 족히 수십 마리는 돼 보인다. 그외 글귀와 연예인 싸인, 연예인 사진 등이 들어간 액자들이 군데군데 걸리거나 서 있다. 거슬리지 않고 공간과 조화를 잘 이룬다.

 

을지다방 카운터.

 

이런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마시는 쌍화차 맛은 일품이다. 쌍화차 자체의 맛도 좋지만 분위기가 MSG. 쌍화차는 기본적으로 바디감이 엄청 묵직하다.그리고 견과류와 대추 등 씹히는 것이 많다. 마시기 보다는 수저로 퍼서 먹는 느낌이다.

 

을지다방 쌍화차.

 

쌍화차는 기본적으로 달짝지근하다. 아니달다. 그런데 한약 맛이 난다. 시중에 파는 광동 쌍화탕보다 진하다. 하지만 이게 맛없고 쓴 한약 느낌은 아니다. 몸이 건강해질 것 같은 한약이면서 동시에 달고 감칠맛 나는 음료 같다.아무튼 맛있다.

 

을지다방 계단쪽 인테리어.

 

처음에 쌍화차가 나오면 계란 노른자부터 먹어야 한다. 노른자를 터트리지 말고 뜨거운 쌍화차 안에서 잘 굴려야 한다. 약간 계란 노른자를 반숙하는 그런 느낌이다. 어느정도 굴려 표면이 익었다 싶으면 그때 수저로 퍼스 호로록 마셔야 한다.입안 가득 터져서 흐르는 계란 노른자가 고소하면서도 니글니글하다.

 

을지다방 테이블과 쇼파.

 

나는 사실 생계란이 싫다. 계란 요리는 무조건 완숙이다. 하지만 을지다방에서 만큼은 예외다. 쌍화차에 띄워준 계란 노른자를 호로록 먹는다. 그래도 이게 엄청 맛있다고는 못하겠다.

 

결론적으로 을지다방은 맛과 멋이 모두 살아있는 노포다. 오래됐지만 더럽거나 조잡하지 않다. 안정되고 차분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점심 후던, 나른한 오후던, 이른 아침이나 저녁이던 쉬고 싶을 때,재충전이 필요할 때 와서 느긋하게 쌍화차 한잔 마시면 마음도 몸도 개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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